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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그 모호함

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4-10-07 (화) 06:12 조회 : 855

은퇴, 그 당혹스럼움을 넘어서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점점 늘고 있다. 환갑이 장수와 노인을 상징하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에 환갑잔치를 하면 웃는다. 통계에 의하면 1960년대에 한국인 평균수명이 60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와서는 평균수명을79세로 보고한다. 50년 만에 평균수명이 무려 20세가 늘어난 셈이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100세 시대는 쉽게 예견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화두는 은퇴다. 사람들은 질 높고 품격을 갖춘 Quality life를 원하지, 목숨만 부지하는 낭비적 삶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대감이 항상 현실적으로 다 채워지지는 않는데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인지 은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상실감이다. 역할 정지로 인한 존재감 축소로 인해 생기는 증상이다. 이 상실감은 생각보다 심각해서 어떤 분들은 급격한 신체적 퇴보와 심리적 공황을 경험한다. 그래서 잦은 분노, 말참견, 그리고 격리와 같은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적 역할은 정지되었으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역할속에 남아있다는 증거다

 

일반적으로 상실(loss)이란 사랑하는 대상을 갑작스럽게 잃은 것을 말한다. 암으로 인한 부모의 죽음, 직장에서의 퇴출 통보, 파산으로 인한 재산 손실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런 상실이 찾아올때 사람은 보통 거절, 격리, 공포, 외로움, 분노, 우울증 등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일반적 상실과 달리Ambiguous Loss라는 것이 있다. 굳이 해석하자면 당혹스러운(모호한) 상실이다. 이런 상실은 통상적으로 몸은 함께 있지만 정신적 관계를 잃어버리는 경우다. 부모의 치매, 부부의 각방 쓰기, 그리고 근무력증으로 인한 기능 상실등이 이에 해당된다. 반대로 몸은 잃었어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다. 납치되어 생사를 알수 없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죽음처럼 그 끝이 분명하지 않다. 여전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연결고리를 갖고 있어서 불확실하다. 당혹스럽고 모호하다. 그래서 당황해하고 혼돈을 겪는다. 은퇴로 인한 기능 상실도 이 모호한(당혹스러운) 상실에 해당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정신과 의사 빅토 후랭크는 그의 유명한 책‘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의 골짜기에서 자신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래에 대한 목표와 순간에 대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빅토 후랭크가 개발한 의미 치료법은 상실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중요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은퇴는 당혹스러운 상실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교수의 어머님은 얼마 전94세에 돌아가셨다. 가시기 전까지 그분은 에쿠아도르에서 온 한 불법체류로 보이는 여인과 함께 사셨다. 처음에는 서로가 잘 안 맞았으나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존재 이유가 될 정도로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에쿠아도르 여인에게 이 교수 어머님의 죽음은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상실감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들 교수가 에쿠아도르 여인을 불러서 체크 한장을 건네며 말한다.“어머님께서 당신에게 유산으로 남긴 것입니다.”여인은 놀라며 대답한다.“왜 제게 이것을…”교수가 대답한다.“당신과의 우정에 대한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삶에 소망이 되는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이자 소망이었습니다.

나이는 나이일뿐이다. 삶에 의미가 실리면 모호함과 당혹감은 새로운 차원의 도약이 될 수 있다.

 

70이 넘어서도 조깅을 하시는 분을 보면 흥이 돋는다. 80 이 넘어서도 찬양대에서 노래 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아름답다. 90 이 되어서도 글을 쓰시는 분을 보면 존경스럽다. 100 세가 가까와도 인터넷 사전을 뒤지며 외국어를 익히시는 분을 보면 경이롭다. 은퇴가 반드시 당혹스러운 상실감에 머물도록 만들 수 없는 이유들이다. 인생은 당혹스러움과 모호함 속에서도 의미와 감동과 소망을 창조할 수 있기때문이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위대한 편지속 글이 떠오른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