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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엿 세례

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4-07-05 (토) 07:28 조회 : 1043

호박엿 세례

 

월드컵 한국 축구대표팀이 저조한 성적을 갖고 인천공항에 입국했다. 결과에 분노한 사람들이한국 축구는 죽었다, 너 때문에 졌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선수단을 코너로 몰아갔다. 게다가 선수단을 향하여 호박엿 세례까지 퍼부었다. 중동국가에서 극단의 모욕을 줄 때에 신발을 던지듯이, 한국에서의 엿 세례는 수치와 굴욕을 상징한다. 엿 세례를 받으며 죄인된 표정으로 말없이 서있는 대표팀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의 산상설교중에판단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판단하지 말라”(7:1) 는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이 말씀은 얼핏 들으면 잘못이 있어도 가능한 덮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거짓말을 해도 판단 없이 넘어가야 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따라서 이 말씀은 선과 악, 사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과 같은 것을 보고도 아무런 분별도 없이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과 의사가 환자의 이빨을 검사하면서치실을 자주 사용하시는 것 같지 않네요. 지난번보다 잇몸이 많이 상했어요라고 할 때 의사는 환자의 치아 상태를 분별하는 것이지 환자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띠라서판단하지 말라의 초점이 정죄하지 말고 분별하라는 데에 있다면, 결과만을 놓고 굴욕감을 주는 정죄는 파괴적 분노의 표출일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라 볼 수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기대치가 과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홍명보 감독이 올림픽 동매달 신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가 대표팀을 맡아 지도한지는 1년도 안된다. 그것도 월드컵 본선에 턱걸이로 올라간 팀을 지도했다. 그런 팀을 월드컵 4강의 영광만을 기억하며 무조건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다. 스스로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는 일본은 4강을 넘어 우승까지 기대했지만 역시 결과는 초라했다. 하지만 일본팀은 환영은 받았어도 굴욕의 화살을 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그런 것들을 참고한다면 한국인의 결과에 의한 매몰찬 비난 증상은 다시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진부할지 모르지만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결과 중심적 문화로 가득한 세상에서 쉽게 수용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실패하고 실수한다.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능력이 있다. 그래서 최고를 추구하고 아름다움을 열망한다. 남을 비난하는 자체가 최고와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의 반영일수도 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흔적이 남아있다는 증거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는 사랑과 격려와 위로를 받아 마땅한 존재이지 비난과 미움의 대상은 아니다

 

비난과 정죄 속에는 상황을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자기 중심적 습성이 꽈리를 틀고 있다. 비난자는 비난 대상의 모든 특성을 다 아는것처럼 행동한다. 상대방의 남모를 속 사정과, 과정의 힘겨움, 불평등한 구조적 모순, 개인의 특성과 같은 것은 무시한다. 심지어 마치 자기가 신이나 된 듯이 상대의 미래까지 재단하고 그 종착역을 다 아는것 처럼 행동한다. 비난은 그래서 실패와 실수를 회복할 기회보다는 절망과 좌절의 깊이만 더해준다.

 

2002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룰 때 한국인들은 기적을 이루었다며 흥분하고 환호했다. 그때 한국팀은 4강의 결과를 낼만큼 기술과 체력에서 최고였다. 3-4위 전에서 11초만에 한 골을 먹는 창피한 기록을 남겼어도, 경기 후 상대팀 터키 선수들과 어깨동무하며 서로 끌어 앉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스포츠가 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런 것들을 다시 꿈꾼다면 비난보다는 현실파악과 과정에 대한 명확한 분별력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과정 속의 옳고 그름과 구조적 모순등을 잘 분별해서 차근차근 최고를 만들어갈 일이다. 사랑과 격려를 통해서.

 

한국 축구는 미래가 있다. 당신들 때문에 즐거웠습니다. 시간 되시면 삼계탕 끓여 드릴테니 와서 드시지요."아자 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