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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 (고전 13:4)

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4-01-04 (토) 04:14 조회 : 1521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 (고전 13:4) 

자본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레바논 베이루트의 어느 한 길을 걷고 있었다. 밴츠를 몰고 가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자본주의자가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벤츠를 반드시 몰고 다닐거야" 사회주의자도 생각한다. "언젠가 저 놈을 벤츠에서 끌어내서 묵사발 만들고 내가 걷는 이 거리를 저 놈도 나처럼 걷게 만들거야"

Baily 교수가 들려주는 이 예화 속의 두 사람은 시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자의 시기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서 찾기에 긍정적으로 처리하면 자기 개발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의 시기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기에 상대방 파괴에 몰입할 수 있다. 후자가 훨씬 악하다. ...

그런데 두 사람의 시기는 본질적으로 비교와 경쟁 구도 속에서 나타난다. 비교 대상이 없으면 시기는 없다. 에덴에서 사탄이 이브를 쓰러뜨렸던 결정적 한 방도 바로 "너도 하나님 처럼 될 수 있다" 비교와 경쟁심 유발이었다. 그래서 에덴의 동쪽에 사는 우리의 현실은 모든 것이 경쟁과 비교의 구조다. 세베대의 두 아들에게 주님의 좌우편을 꾀차고 해달라고 요청한 어머니(막 10:37) 의 모습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고대로 반영한다. 나 홀로 사막에 진 치고 산들 이 시기가 사라질까?

바울이 이 시기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이 시기가 고린도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고전 3:3)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로 인해 고린도교회는 지극히 세속적인 추한 경쟁구도를 낳았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심지어 그리스도파. 오늘날의 교회도(혹은 신자들도) "내가 너보다는..." 이라는 비교와 경쟁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고린도 교회의 유치한 모습은 여전할 것이다.

바울이 시기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의 유치함을 지적함도 있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폭로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용한 단어 '사랑' 은 전부 아가페다. 단 한개도 에로스나 필레오가 없다. 아가페: 자기를 죽이면서 남을 살리는 사랑. 내 힘으로 불가능한 신적 사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주님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하다.

교회가 아무리 사랑을 외치고 아무리 성령충만을 외치더라도 한편에서는 여전히 경쟁과 비교 구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감정적 성령충만이고 종교적 열광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룩한 것 같으나 가장 세속적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두 얼굴이라고 비난 받는 이유가 그것 아닌가. 가장 거룩한 듯 보였으나 실상은 가장 시기심에 불탔다. 그래서 그들도 파당을 형성했고 시기심으로 사랑의 본질인 주님을 죽였다. 그러기에 바리새인(율법주의)과 고린도교회의 종교적 열광주의는 서로 통한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자리에는 시기심이 꽈리를 틀고 있다.

새해 벽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더욱 깊이 녹아들기를 원하면서 한해를 시작하기로 다짐 해본다.

새해에도 여러분 모두 주 안(강조 ^^)에서 형통한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