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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9-07-27 (토) 03:47 조회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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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2019

 

이제 26살이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대학원을 나와 직장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인재다. 교회에서도 리더쉽을 인정받는 신실한 성경 교사다. 내년이면 사귀던 남자와 결혼도 준비 중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카중 하나다. 그런데 몇 주 전 암이 발견 되었다. 

 

어린 조카의 암 소식에 하늘이 노랬다. 하물며 부모의 심정은 말해 무엇하랴. 당사자인 조카는 말은 안 해도 두려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울었다고 한다.  21세기 최고의 기술시대에도 암은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어서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어 결국 지난 주 급하게 시카고의 조카를 방문했다. 4일동안 의사들과 소통하며 최선의 치료를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하심을 구했다. 생각보다 조카는 씩씩했다. 특유의 긍정적 믿음으로 오히려 방문한 삼촌을 괜찮다며 위로했다. 뭉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염려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로 생기는 염려를 가라 앉힐 길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하나님, 키모과정을 견디게 해 주세요. 완치시켜 주시고 살려 주세요!

 

하나님은 왜 착하고 신실한 믿음의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 하실까? 신자라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고난을 경험한 신자라면, 누구나 묻는 질문이다. 고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일때 대부분의 사람은 분노한다: “내가 뭐 잘못했다고!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아닐까?” 원망도 한다: “왜 하필이면 저예요?

 

고난의 원인은 다양하다. 당사자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본인과 상관 없이 찾아 오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고난은 신비다. 고난 받을 이유 없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고난을 겪으신 것이 그 증거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한 음주운전자에 의해 불구가 되는 것도 그 증거다. 그러기에 고난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은 불확실한 추측과 분석보다는 고난에 동참하며 위로하는 일이다.

 

암에 걸린 조카를 위해 친구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함께 울고 웃으며 놀아주었다. 간호사 친구들은 매일 돌아가면서 현재 필요한 주사도 놔 주면서 살펴주었다. Care Package 로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손 잡고 기도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감사하고 감사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동행 속에 살아가는 것 만큼 축복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 믿는 자들의 위로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다면 거기가 생명의 현장이다. 그런 위로를 통해 이 세상의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약속을 분명하게 확신하기 때문이다.

 

혹여 우리 공동체 속에 혹은 내 주변에 고난이 찾아 온다면 불확실한 추측이나 분석, 또는 종교적 판단보다는 기도와 격려로 서로 위로를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로 성숙해 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