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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첩

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9-07-27 (토) 03:43 조회 : 280

할머니의 수첩

 7-14-2019

 

지난 주 향년 93세로 소천하신 신용숙 성도(강순자 집사 모친)님 장례예배를 교회에서 치루첬다. 예식순서 중 손자의 조사(Eulogy) 를 통해 그간 내가 알지 못했던 고인의 역사를 들으면서 우리 어머니 세대의 여자의 생애가 참으로 지난 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손자는 아주 진솔하게 할머니의 삶을 가감 없이 풀어냈다.

 

조사에 의하면 할머니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대상이셨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18세에 급하게 결혼하셨다. 하지만 28세 때에 남편과 사별하시고 자녀를 키우셨다. 이후 딸 가정과 함께 중동, 남미, 유럽등으로 이주하며 사시다가 약 30년 전에 미국으로 오셨다. 미국에서의 삶은 험난하셨다.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으셨다. 두 손주들은 그런 고인의 지난한 삶을 몸으로 겪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했다.

 

조사에는 여기에 기록하지 못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할머니의 수첩에 관한 내용이다. 고인께는 수첩(노트)이 한 권 있었다. 그 수첩은 대 부분이 비어 있었고 약 10개 정도의 문장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문장들은 모두가 날짜들이었다. 시집 가신 날. 남편 생일. 자녀들 생일. 미국 오신 날짜. 영주권 받으신 날 등등이다.  

 

수첩에 기록된 날짜들은 교육을 받지 못한 할머니가 남기실 수 있는 최고의 글들이었다. 일종의 자서전이었다. 손자는 그 할머니의 수첩을 유산처럼 생각했다. 날짜 속에 생사고락을 함께 한 수 많은 의미와 언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인생에서 최고의 사건들을 또렷하게 기억하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손자가 할머니의 수첩 내용을 전달할 때에 감동이 전달되었다. 장례예배에 참석하신 객석을 보니 여기 저기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다. 슬펐으나 기뻤다. 이별이었으나 의미와의 만남이었다.       

 

고인은 가셨다. 참으로 지난한 일생이셨다. 그러나 마지막 몇 년 간의 삶은 지난 90년을 보상하고도 남을 축복이었다. 수첩 속의 날짜들이 이를 대변한다. 그 날짜 속에는 믿음, 사랑, 그리고 소망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의 말년은 자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은혜가 보였다.

 

유산은 반드시 재산이 아니어도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짧은 몇개의 날짜들을 기억하는 것으로도 깊은 가치를 남기기 때문이다. 장례식 조사 속에 담긴 할머니의 수첩을 통해 우리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남겨야 할 유산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가 되었다. 유가족께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기도하며 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유가족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