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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글쓴이 : 천성교회 날짜 : 2016-09-20 (화) 08:14 조회 : 702

전통

 

추석은 민족적 명절이다. 그런데 이 명절이 며느리들에게는 혼절이다. 아이들 데리고 장시간 고속버스를 타고 시댁에 갔더니 기다리는 것은 고된 가사노동이기 때문이다. 전통음식, 제사음식을 만들며 예의를 갖춰 수발 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다. 심한 경우 명절 트라우마로 발전한다. 오죽하면 명절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명절 이혼” 현상이 생겨날까?

 

그래서인지 며느리들이 반기를 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왜 추석에는 꼭 시댁에만 가야 하는가친정은 왜 안되는가? 음식과 설거지는 왜 여자만 해야 하는가?” 등등이다. 불평의 근거는 남녀가 평등한데 그것을 무시하는 전통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불평이 거세지면서 며느리들이 추석 귀향 기피 현상이 생기고 있다. 이를 부추기듯 온라인 쇼핑물에는 ‘며느리 필수품’ 이라 하여 “가짜 깁스”가짜 코피”로 위장할 수 있는 소품들이 등장했는데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엊그제 신문에서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문구를 읽었다. 한 시골 마을 어귀에 걸린 현수막 내용이다: “축 환영, 에미야 어서 와라, 올해 설거지는 시 아버지가 다 해주마” 추석을 맞아 귀향하는 며느리들을 환영하는 마을 시아버지들의 집단 마음 표현이다. 그간 며느리들의 명절 고통이 심했음을 인정한다는 문구다.  

  

세월이 변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설거지 뿐이랴. 더 적극적 현수막이 걸릴지 모른다: “에미야 몸만 와라. 음식, 설거지 등 모든 것은 시아비가 다 한다. 너희들 가져갈 음식도 챙겨 놨다. 와서 그냥 쉬기만 하면 된다.” 직장, 가사일, 교통지옥을 겪으며 내려오는 며느리를 생각하면 와주는 것 만도 효도라 생각하겠다는 의미다. 게다가 며느리가 편해야 보고싶은 아들과 손주도 자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전통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말도 안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전통은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도구로 작동 될 때 가치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차별이나 불공평을 낳는다면 가치를 상실 한다세월의 변화로 전통의 귀한 가치가 훼손된다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다. 젊은이가 노인에게, 학부모가 교사에게 막말을 하는 것은 전통적 효와 권위를 훼손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권위만 내 세워 희생을 강요하는 전통은 재고해야 한다. 변하는 세월이 평등과 공의를 요청하는데 “지금까지 그래왔는데...”만 주장하며 가지 입장만 고수하면 역공 당한다.

 

베트남에서는 쵸코파이가 최고 제사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도 쵸코파이를 넘어서서 피자나 바나나를 제사상에 올리자고 할지 모른다. 3 대까지 가지 말고 부모세대 까지만 제사하자고 할지 모른다. 그럴 때 전통은 어찌 대처해야 할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반드시 송편과 사과여야만 한다. 최소 고조부까지는 모셔야 한다”가 정답일까? 고민할 가치도 없는 것일까?  

 

성경에도 명절, 안식일, 음식, 그리고 효에 관련된 수 많은 전통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좋은 전통들을 함부로 남용한다 하여 예수께서 유대인들을 질타하는 장면이 많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병자와 약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행동이 좋은 예다. 효에 관련된 고르반이라는 전통은 남용의 극치를 보여준다.‘하나님께 드렸음이라는 핑계를 대며 마땅히 부모에게 해야 할 효도를 교묘하게 기피하는 행동이고르반 (korban)’이다. (7:11, 15:5) 믿음을 빙자한 거룩한 (?) 가로챔이다. 추한 종교적 가면이 낳은 현상이다.        

 

전통은 생명을 살리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공의와 평등의 정신에 기초할 때 보존 될 가치가 있다. 따라서 시대가 요구할 때에 그동안 혹여 남용으로 인해 버리거나 고쳐야 할 전통은 없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